언젠가 스무살 때, 광화문 교보에서 여행책을 보고 있다가 무작정 론리플래닛 프라하 편을 샀습니다 (다른 하나는 싱가포르)
사놓고도 언제가보나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번 유럽에 하루 끼워가야지 싶었죠. 그런데 이게 제가 세운 이번 여행 계획에서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하루 더 끼워넣을 걸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대한항공이 프라하 공항에 손 댄 곳이 많아서 한글 안내가 잘 되어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글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니면 환승구역 안에만 있나?

날씨가 안좋습니다. 심지어 공항버스도 제 시간에 안왔고요. 다른 관광객들이랑 눈치 싸움 하다가 40분 늦게 도착한 버스 타고 시내로 들어가봅니다.

프라하 중앙역에 짐 맡기고 슬금슬금 걷는데, 제가 생각하던 유럽의 모습은 프라하가 제일 닮아있습니다. 낮은 건물과 울퉁불퉁 돌로 된 바닥 등.

제가 생각하는 유럽은 이런 거 + 그리고 화장실 갈 때마다 동전 챙기느라 성가신 나라였거든요. 프라하에서는 몇 번 바지에 지릴 뻔 했습니다. 스타벅스가서 괜히 병음료 사먹고 화장실 간 게 무슨 일인가요. 그리고 더 아까운 건 방금 화장실 갔다 왔는데 또 신호올 때. 제가 사람만 아니였으면 어디든 지렸습니다.

지금까지는 비가 와도 미스트처럼 내렸는데, 갑자기 폭우입니다. 마지막 날까지 날씨 좋은 날이 없다며 한탄하다, 담배 하나 하고 성당으로 피신 갔다가 나왔습니다.

잔뜩 심술난 채로 걷는데 하늘 낯이 변하네요.

그러다 눈부시게 볕이 듭니다. 비 온다고 성당에서 투정부려서 그랬을까요. 너무 고맙습니다.

날씨 ㄱㅐ 좋아졌습니다.

유럽에서 본 중 제일 멋있는 장소였습니다. 비도 잠깐 와주셔서 바닥도 매끈하고 성 외벽도 채도가 높아졌네요. 누군가 나를 위해 설계한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갑자기 인류애가 솟아서, 거리에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사랑스럽던 기억입니다.

프라하 성 보고 나와서 체코뽕 가득 찼습니다. 갤러리가 있길래 계획 없이 들어갔는데, 세상 이런 깜찍한 장소가 있네요.

전시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영상으로 진행하는 전시가 있었고 3편 다 보고 나오느라 시간 꽤 썼습니다.

간단하게 이른 저녁까지 마치고 나갑니다. 커피는 그냥 그렇습니다.

낭만적. 언젠가 신혼 여행은 프라하로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곳은 동네 전체가 극장인가 싶은 멋있던 조명들. 여기를 걸으면 서로가 너무 예쁘게 보일 것 같아서, 없던 사랑도 생겨날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지금도 너무 좋습니다.


파우더 타워 근처 골목을 걷다가 만난 인싸 형아들. 사진 찍으니 손 흔들어주던데 너무 귀여워서 조금 십덕사하고 깨어났습니다.

물가고 저렴하고 귀여운 인싸 형아들도 있는 이 곳에서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갑니다. 프랑크푸르트를 하루 빼고, 프라하에서 하루 더 있을 걸 후회되네요. 여기도 미련 하나 남겨두고, 심야 버스타고서 꾸벅꾸벅 졸아가며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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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지 2주가 다 되었는데도 아직 여행하며 느꼈던 감정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근하기 싫기도 하고(?) 일하면서 빡센 순간 있어도 여행할 때 있던 일 생각하며 피식 웃고. 6개월 정도는 유럽뽕 맞은 채로 지낼 것 같습니다.